테네브룩스 모로의 기상천외한 모험기 모음
[테네브룩스 모로의 기상천외한 모험기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차원 비행선의 선장인 모로가 겪은 "실화"를 그린 통속 소설입니다. 다만 실제로 모로 선장 본인은 나고 자란 워터딥을 떠난 적이 없으며, 그나마도 원고를 투고한 뒤 먹을 것과 잉크를 살 때가 아니면 하품하 는 관문에 잡은 숙소에서 한 발짝도 나서지 않기로 유 명합니다.]
제1권
레드 드래곤을 해치우자 기사는 급기야 내 비행선으로 뛰어내렸다. 영계의 어둡고 불길한 조류가 추락하는 드래곤을 집어삼키는 순간, 기사는 새색시 호의 갑판에 착지 했다.
충직한 놀스는 곧장 놈에게 달려들었지만 발톱도 송곳니도 놈에겐 소용없었다. 육신과 분리된 영체 투영 앞 에서는 성난 타백시 조수의 맹렬한 공격조차 헛수고였던 것이다. 교활한 기스양키 기사는 맥없이 스쳐 지나가는 공격을 비웃더니 별안간 은검을 크게 휘둘렀다. 은검은 놀스를 빗나갔으나 타백시의 육신과 용감한 영혼을 잇는 영혼줄을 단칼에 잘라냈다.
믿음직한 고양이 동료를 잃자 가슴이 미어졌지만, 마냥 슬픔에 젖어 있을 겨를이 없었다. 나는 느긋하게 이죽거리는 기스양키를 향해 돌진했다. 보나 마나 이번에도 상대가 영계의 법칙에 얽매여 자신은 상처 하나 입지 않을 줄 알았으리라. 그러나 테네브룩스 모로 선장은 결코 녹록한 상대가 아니란 말씀
안타깝게 요절한 놀스와 달리 난 온전히 영계에 들어온 상태였고, 냅다 사타구니를 걷어차 놈의 오산을 보기 좋게 박살 냈다. 놈은 새색시 호의 난간 너머로 고꾸라져 안개 속으로 떨어졌고, 먼발치로 보이는 투나라스의 스산한 성채 위로 드래곤 대군이 날아올랐다.
제2권
그렇게 우리는 요정숲의 영원한 석양을 받으며 엘라드린의 땅에 도착했다. 엘라드린이 사는 숲의 변두리를 우회하려던 영악한 계획은 보기 좋게 물거품이 되었다. 강이 스스로 물길을 바꾸며 새색시 호를 그늘진 숲으로 인도하려고 꾀를 부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가까이 나무에 붙었던지, 수풀 사이로 엘라드린들이 춤을 추는 모습마저 어렴풋이 보일 정도였다.
지금이야 나름 익숙하지만, 엘라드린을 처음 접한 순간의 인상이란 마치 악몽에서나 맞닥뜨릴 법한 엘프 같았다. 몸은 나뭇가지처럼 가녀린 데다 머리칼은 온갖 색깔로 변했다. 더구나 삶의 터전인 요정계와 마찬가지로 감정 기복이 들쭉날쭉해서, 잔잔한 연못처럼 차분 하다가도 산사태처럼 거칠고 난폭하게 변하기도 했다.
사실 후자와 같은 태도를 접한 것은 엘라드린과 함께 오붓한 시간(몇 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을 보낸 뒤의 일이다. 선원 가운데 대장장이로 고용한 하플링 여인이 겁도 없이 우리가 신세 지는 숲의 주인보다 크게 목청껏 노래를 부른 것이다. 크나큰 결례에 숲은 정적에 빠 졌지만, 내가 기지를 발휘하여 즉석에서 거래를 제안함으로써 상황은 원만하게 수습됐다.
요정계를 뒤로 하고 출항하던 날, 선원의 머릿수가 하나 줄었고 숲에는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만 쓸쓸히 감돌았다. 노래 솜씨 보다 엘라드린이 쓸 검을 단조하는 솜씨가 더 출중했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요정계를 떠난 지도 벌써 몇 백 년이 지났다. 부디 지금은 은퇴했기를 바랄 따름이다.
제3권
바로비아의 음산한 분위기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하다. 안개가 마음을 현혹하고 영혼을 괴롭힌다고 하는가 하면, 나그네를 절망에 빠뜨려 영영 맴돌게 만든다는 말도 있다.
새색시호가 짙은 안개를 가르던 순간에도 난 코가 좀 막힌 것을 빼고는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선원들은 사정이 달랐다. 이미 배 밖으로 몸을 던진 선원들 말고는 하나같이 울고불며 야단들이었던 탓에, 결국 전부 돛대에 꽁꽁 묶어 놓고 홀로 배를 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공포의 군주를 직접 찾아 나섰다. 제아무리 새색시 호라 한들 이곳을 다스리는 군주의 허락 없이는 차원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난 조타석에 떡하니 서서 자작곡을 목청껏 부르며 안개 속을 누볐다.
오래지 않아 놈이 나타났다. 별안간 그림자가 머리 위를 스치나 싶더니, 섬뜩할 정도로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틀림없이 심리적 위압감을 염두에 둔 등장이었으리라. 그러나 서로 적의가 없음을 확인한 뒤로는 의외로 말이 통한 덕에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 상의 끝에 통행료 협상은 타결되었다.
어떤 통행료를 치렀으며 그자가 어땠는지에 관한 구구절절한 사족은 달지 않겠다. 대신 흉흉한 소문과 달리 무척 예의 바른 상대였다는 건 말할 수 있다. 날카로운 송곳니 또한 모두의 생각과 달리 크게 거슬리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제4권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추락" 하는 것도 아니고 "비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공기 원소계의 하늘에는 일반적인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아서 위치나 방위를 알아 내려한들 허사였다. 그래도 이렇게 끝없는 창공을 거침없이 가르며 맛보는 격렬한 자유가 아니었더라면 심란한 기분을 추스를 길이 없었을 것이다.
"어딘가 켕기는 눈치인데." 날 살펴보던 에럴스가 울부짖는 바람 너머로 소리쳤다. 고블린에게 쉽사리 의표를 찔렸다 한들 딱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 에럴스는 워낙 박식한 데다 나와는 평생지기 친구였으니까,.
"그래."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슬쩍 몸을 돌려 허공을 떠다니는 아라코크라 둥지를 피했다. "프라이머스 군주는 내가 자신의 정신궁에 침투한다는 계획을 알고 있었어. 결국 선원을 전부 메카너스에 두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셈이니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에럴스는 새하얀 머리뼈로 만든 탈로 얼굴을 가렸지만 분명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리라. 백골 탈은 에럴스가 몸담은 수도회 특유의 복식으로,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 하지 못할 습관 가운데 하나였다. "전부 죽었겠지? 그 중에 배신자도 있었을테니까."
"죽어? 그럴 리가, 실은 거래를 했어. 프라이머스는 필멸자의 행동을 연구하고 싶어 했거든. 누가 배신했는지도 선뜻 알려 주던걸?"
나는 손을 뻗어 에럴스의 손가락에서 명령의 반지를 벗겨냈다. 반지를 빼자마자 에럴스는 날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에럴스의 외마디 비명이 휘몰아치는 광풍에 묻히는 찰나, 새색시 호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비행선에 올라타며 손바닥에 놓인 반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똑같은 반지가 내 손가락에도 있었다. 오래 전에 에럴스가 영원한 우정의 징표로 만들어 선물한 쌍반지 였으니까.
걱정 마시라, 독자 여러분. 이대로 에럴스를 버릴 생각은 없다. 언젠가 돌아와 붙잡을 테니 말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