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유혹: 자서전
악마신의 손길로 인해 핏줄이 송두리째 바뀐 적이 있는 가? 이는 설령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는 자들에게 조차 실로 소름 끼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모데우스에게 몸을 바친 소수가 티플링의 조상이 된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악마의 계략에 빠지기 전에도 우리는 멸시의 대상이었다. 지옥의 피가 단 한 방울만 섞여도 타락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세간의 인식 때문에, 이제는 "악마족"이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자진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종족은 많건만, 어째서 우리에게만 그런 꼬리표가 붙는지 통탄할 노릇이다.
대체 짓지도 않은 죄를 어떻게 속죄해야 한단 말인가? 아스모데우스의 가증스러운 의식에 결탁한 워락을 모조리 도륙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앙갚음을 행한다고 해도 신의 뜻을 번복할 수는 없으며, 상대가 간악한 거짓의 군주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걸핏하면 주위로부터 도둑이니 이단자니 하는 오명을 살 때면 정말로 그렇게 되고픈 유혹이 들기도 한다. 허나 그것이 바로 아스모데우스가 바라는 것이기에 꾹 눌러 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