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이오세파 엘진이라는 학자가 집필 중인 만물 경전 복원판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만물 경전은 실전된 금단의 지식이 담긴 드니어의 연대기로, 저자는 이 책을 복원하려는 이단 행위로 말미암아 드니어 교단에서 파문 됐습니다.]

생명의 가치란 무엇인가? 비판적 논평으로 지면을 할애하기에는 너무 난해 한 주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판단력을 흐리는 신비주의와 변덕 맞은 감상주의를 치우고 보면, 모든 차원의 만물은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저마다 정량화 가능한 가치를 갖는다는 명쾌한 답이 나온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물리적 육신이 소멸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익히 알고 있다. 오히려 영혼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자유로워지며, 업보와 신앙과 지위에 걸맞은 안식처를 찾아 차원의 장벽을 초월한다. 하지만 영혼이 얼마나 독실한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켈렘보어가 그 가치를 평하고 이에 상응하는 권능을 부여하는 까닭에, 우리는 죽어서도 시장 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출발하는 방법도 있다. 세계 각지의 클레릭들은 그만한 자격이 있거나 의지가 충만한 영혼을 되살리는 권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부활 주문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만한 재력을 갖춘 사람은 소수이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그런 길을 밟는 대다수는 부유층에 국한된다.

그런 방법으로 사후에서 돌아온 이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부류 였던지라, 왜 굳이 생을 연장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선택을 제대로 논평 하려면 직접 같은 길을 밟아 보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어쩌면 지금 집필하는 훌륭한 학술서 덕분에 나 또한 언젠가 그럴 만한 자격과 재력을 겸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