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러운 거래
책 내용
책장이 너덜너덜한 연극 대본입니다. 어지간히도 많이 읽었던 모양입니다.
[희곡 "만족스러운 거래"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선정적인 내용 때문에 최소 4개 도시에서 출간이 금지되었으나, 워낙 세간의 이목을 끌어 해적판이 난리였습니다.]
서술자
지금부터 남모를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슬픔에 빠져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진 사내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었지요.
일이 뜻대로 풀리자 캠비온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로버트가 들어온다. 티플링 남성. 울고 있다. 칼라일은 무대 오른쪽에 있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칼라일
눈물을 거두게, 젊은이여. 비록 아내는 자네를 떠났네만,
자네 대신 침대에서 외로운 심사를 달래 줄 상대가 있지 않나?
신음을 흘리며 다른 남정네의 이름을 부른다니, 낯 뜨겁군!
그런데도 아내의 마음을 되찾고 싶단 말인가?
로버트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칼라일
난 그림자 속에서 한동안 자네를 지켜봤네
자네가 슬픔과 수치심에 몸부림치는 것도 당연해.
아내가 자네를 부둥켜안고 자네의 이름을 부르짖게 하고픈 마음은 굴뚝같건만,
정작 아내의 몸과 마음을 얻을 방도가 없어 고심이지.
로버트
내가 겪는 저주와 고통, 슬픔과 비애를 안단 말인가?
칼라일
내 눈은 못 속인다네. 물건이 작아서 고민이잖나?
텃밭에 골을 파려면 괭이자루가 튼실해야 하건만,
정작 자루는 고사하고 이쑤시개가 달렸으니,
어찌 제대로 된 거사를 치러 보겠나?
만족스러운 거래: 충격적인 진실
손만 대도 구겨질 듯한 싸구려 종이에 인쇄된 기사입니다. 극작가 킹슬리 하프가 쓴 작품의 이면에 숨겨진 "충격 실화"를 폭로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희곡 "만족스러운 거래"의 감독이자 각본가인 킹슬리 하프를 취재한 내용입니다.]
기자
이 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셨나요? 상당히 수위가 있는 희곡이잖아요.
하프
금기를 향한 탐구 정신이죠. 우리의 참된 모습을 고찰한달까요. 로버트처럼 캠비온과 거래할 수만 있다면 누가 마다하겠어요?
기자
글쎄요, 대부분은 마다할 것 같은데요.
하프
사람 심리를 모르시는군요. 누구에게나 숨겨진 욕망이 있기 마련입니다. 캠비온은 그걸 한눈에 알아보죠. 어떻게 보면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를 빠삭하게 안 달까요.
기자
그런데 극의 결말에서 로버트는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잖아요. 그것도 "욕망"의 결과인가요?
하프
하나 간과하고 계시는군요. 로버트는 칼라일한테서 달아나려다 죽었어요. 거래를 어긴 결과죠.
기자
그래서 관객들로 하여금 악마와 거래하라고 부추기시는 건가요? 로버트처럼 모든 걸 놓아버리고 영혼이라도 바치라고?
하프
인생은 한 번뿐입니다. 이왕이면 본전은 뽑아야죠.
기자
그럼... 작가님은 무슨 거래를 하셨나요?
하프
무슨 말씀이신지?
기자
이번이 감독으로서 첫 작품이잖습니까. 이전에는 "발더스 발행인" 같은 자극적인 대중지 연재조차 번번이 퇴짜 맞으셨는데, 정말로 외설적인 희곡을 위해 영혼을 파신 겁니까?
하프
그게... 됐습니다. 취재는 이쯤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