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삶을 위한 교훈
슬기로운 삶을 위한 교훈 제4권: 도시에서 살아남는 법
얄팍한 염가판 책입니다. 점토로 만든 담뱃대를 물고 얼굴을 찡그린 사내가 표지에 새겨져 있습니다.
[첫 장에 책의 내용을 요약했고, 그 뒤로는 엉터리 설명을 참 길게도 늘어놨습니다.]
I. 도시 멀리하기: 슬기로운 독자를 위한 가장 간단한 조언은 도시의 문턱을 아예 밟지 말라는 것입니다.
II. 시장: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해링턴, 똑같은 양모랑 순무를 팔아도 마을 장터보다 도시 시장에서 더 높은 값을 받잖아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 시장으로 가는 길에 양모고 순무고 몽땅 털릴테고, 결국 멍과 혹만 달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겁니다.
III. 주점: 슬기로운 독자라면 마을에서 빚은 맥주를 친구들과 함께 걸치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지만, 검의 해안 각지의 도시에 즐비하다는 요란한 주점에 관한 소문을 들어 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달아오른 인어"니 "위저드의 육봉"이니 하는 야릇한 간판을 뻔히 보고도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면, 술 한 잔을 채 비우기도 전에 주머니를 탈탈 털리고 멍과 혹만 달게 됩니다.
IV. 하수도: 침대 곁에 요강을 뒀다가 날이 밝으면 마을 퇴비 구덩이에 비우는 것이 슬기로운 위생 관리법 입니다.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이런 간편하고 위생적인 방법 대신, 시가지 아래로 거대한 하수도를 파서 온 도시 사람들의 분뇨를 모아 흘려보냅니다. 그래서 하수도에는 온갖 더러운 괴물이 득실거리지요.
V. 길을 잃기 쉽다: 도시라는 곳은 지나칠 정도로 넓어서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한번은 어떤 친구가 그러더군요. 발더스게이트는 사실 세 도시를 하나로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라고요. 실은 바깥 도시, 아랫 도시, 윗 도시로 나뉜다고 합니다. 녀석은 제가 그 말을 듣고 입 이 딱 벌어질 줄 알았던 모양이지만, 저는 녀석의 얼굴에 침을 탁 뱉고는 썩 쫓아 버렸습니다.
해링턴 네덜린
슬기로운 삶을 위한 교훈 제12권: 자리엘의 타락
얄팍한 염가판 책입니다. 손에 맥주잔을 들고 얼굴을 찡그린 사내가 표지에 새겨져 있습니다.
[자리엘의 타락에 관한 짧은 서문으로, 책의 내용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슬기로운 독자 여러분. 벌써 투덜거리는 소리와 신경질적으로 담뱃대를 씹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아베르누스의 대공한테서 교훈을 얻으라고? 해링턴이 드디어 실성했나?" 저는 멀쩡합니다. 그러니 진정들하세요.
본래 우주를 아우르는 대사건은 우리 일상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지만, 자리엘에 얽힌 이야기는 그 경우가 다릅니다. 자리엘이 몰락한 과정을 보고 있자면, 거들먹거리며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웃이나 지인이 생각날 테니까요. 처음에는 휴경지에 감자 말고 순무를 기르라고 잔소리를 하더니, 나중에는 허리춤에 부엌칼을 차고 나타나서는 같이 농장 뒤편에 있는 버려진 지하 묘지를 털러 가자고 하는, 그런 겉과 속이 다른 부류지요.
자리엘은 본디 피의 전쟁("제21권: 슬기로운 독자에게는 시시콜콜한 사건"에서 자세히 다룹니다)의 추이를 관찰하는 일을 맡은 천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관찰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자리엘은 어느덧 멋대로 직접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맥주잔을 쏟은 것 때문에 시비가 붙은 미련한 술꾼 둘을 멀리서 구경하기는커녕 덩달아 싸움에 끼어들어 주점을 싸움판으로 만드는 격이라고 할 수 있죠.
자리엘은 호기롭게 아베르누스에 쳐들어갔다가 보기 좋게 패배했고, 그렇게 타락한 끝에 이제는 아베르누스의 사악한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슬기로운 독자 여러분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답은 뻔하지요! 나서 봤자 소용없는 일에 나서지 말라는 겁니다. 이역만리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신경 쓰지 말고 여러분의 밭과 가족, 그리고 친구를 돌보세요. 남의 곤경에 간섭하면 그 불행은 여러분의 것이 될 뿐입니다.
해링턴 네덜린